소설 소나기 小説ソナギ 全文
소나기(ソナギ) - にわか雨
1
내가 처음 소녀를 본 것은 시냇가였다.
하교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소녀는 시냇물에 손을 담그고 물장난을 하고 있었다.
나는 한눈에 소녀가 윤 씨네 손녀인 것을 알았다.
며칠 전 서울에서 전학 온 애다.
'서울에는 시내가 없는 걸까?'
소녀는 징검다리 한가운데에 앉아서 오직 물장난만 하고 있다.나는 시냇가에 앉았다.
소녀가 길을 비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마침 건너편에서도 시내를 건너려는 사람이 있어서 소녀가 길을 비겨 주었다.
2
이튿날은 좀 늦게 시냇가로 나왔다.
이 날도 소녀는 징검다리 한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분홍색 스웨터 밖으로 드러난 목덜미가 무척 하얬다.
소녀는 내가 서 있어도 그냥 물장난만 하고 있다.
그러다가 소녀가 물 속에서 뭔가를 하나 집어 냈다.
하얀 조약돌이 었다.
소녀는 벌떡 일어나 징검다리를 뛰어 건너갔다.
징검다리를 건너가다가 이쪽으로 돌아서며 , '바보' 하고 조약돌을 던졌다.
그리고는 소녀는 갈대밭 사이로 뛰어가 버렸다.
나는 소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대로 서 있었다.
그리고 소녀가 던진 하얀 조약돌을 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3
삼일째는 좀 더 늦게 시냇가로 나왔다.
소녀가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내 가슴 한구적이 왠지 허전했다.
나는 주머니 속 조약돌을 만지작거렸다.
소녀가 않아서 물장난을 하던 곳에 않아 보았다.
햇빛에 검게 탄 얼굴이 물에 비쳤다.
보기 싫었다.
두 손으로 물을 휘저었다.
소녀의 '바보 바보'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달리기 시작했다.
4
거의 열흘이 지났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소녀를 보았다.
또 물장난을 하고 있었다.
나는 모르는 체하고 징검다리를 건넜다.
'얘,이게 무슨 조개니?'
나도 모르게 돌아섰다.
소녀에 맑고 검은 눈과 마주쳤다.
나는 얼른 눈길을 아래로 떨구었다.
'비단조개.'
'이름도 참 예쁘구나.'
소녀와 조개 이야기를 하며 같이 걸었다.
갈림길에 왔다.
소녀는 왼쪽으로 가야하고 나는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
5
소녀는 걸음을 멈추고,'너 저 산 너머에 가 본 적이 있니?'
멀리 보이는 산을 가리키며 물었다.
'없다.'
'우리 한번 가 볼래? 시골에 오니까 심심해 죽겠다.'
'저래 봬도 멀다.'
'멀면 얼마나 멀겠어? 나 서울에 있을 때 더 먼 곳까지 소풍 갔다.'
소녀의 눈이 금방 '바보 바보' 할 것 같았다.
논길로 들어섰다.
논에는 허수아비가 서 있었다.
나는 허수아비 줄을 흔들었다.
'와,재밌다 !'
소녀도 허수아비 줄을 잡고 흔들어 댔다.
허수아비가 춤을 춘다.
소녀가 웃을 때마다 볼에 보조개가 생겼다.
6
논이 끝나는 곳에 시내가 하나 있었다.
소녀가 먼저 뛰어 건넜다.
나도 그 뒤를 따라 건넜다.
거기서부터 산 아래까지는 밭이었다.
'저게 뭐니?'
밭길을 지날 때 고녀가 물었다.
'무밭이야.여기 무 참 맛있다.'
'그래? 나도 한번 먹어 보고 싶다.'
나는 무밭으로 들어가서 무를 두 개 뽑아 왔다.
내가 먼저 한 입 베어 먹었다.
소녀도 따라 베어 먹었다.
그러나 세 입도 못 먹고,'아이,매워.' 하며 집어던졌다.
'정말 ! 매워서 못 먹겠다.'
나는 소녀보다 더 멀리 던져 버렸다.
7
산이 가까이 다가왔다.
산 아래에는 꽃이 잔뜩 피어 있었다.
'이 꽃들 이름이 워니?'
'이건 들국화,이건 도라지꽃...'
소녀가 꺾은 꽃의 이름을 하나하나 가르쳐 주었다.
'도라지꽃 참 예쁘다.여기에는 서울에서 보지 못한 꽃이 많이 있네.'
나도 꽃을 꺾기 시작했다.
한아름 꺾었지만 싱싱한 꽃만 소녀에게 주었다.
'저건 또 무슨 꽃이니?'
꼭 우리 학교에 있는 등꽃 같아'
소녀는 산비탈로 뛰어가서 꽃가지를 꺾으려고 했다.
하지만 쉽게 꺾이지 않았다.
치맛자락 아래로 속치마가 언뜻 보였다.
소녀의 모습을 나는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8
'아앗 !' 소녀는 산비탈에서 그만 미끄러지고 말았다.
나는 깜짝 놀라 달려갔다.
소녀는 넝쿨을 잡고 있었다.
'도와 줘.'
소녀가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얼른 잡았다.
그리고 힘껏 끌어올렸다.
소녀의 오른쪽 무륲에서 피가 흘렀다.
나도 모르게 소녀의 상처에 입술을 대고 빨랐다.
그러다 갑자기 송진 생각이 나서 소나무숲으로 달려갔다.
송진을 바르는 순간 소녀가 비명을 질렀다.
'앗,따가워.'
'이걸 바르면 빨리 낫는다.'
소녀가 전에 없이 얌전히 있었다.
9
나는 소녀 대신에 산비탈로 내려가 꽃을 꺾어 왔다.
꽃을 한 아름 든 소녀의 모습이 누부시다.
나는 얼른 눈을 돌렸다.
'저기 송아지가 있다.그리 가 보자.'
누런 송아지였다.
아직 어린 송아지였다.
나는 얼른 송아지 등에 올라탔다.
송아지가 껑충거리며 돌아간다.
소녀의 하얀 얼굴과 분홍색 스웨터가 빙빙 돌아간다.
머리가 어지럽다.하지만 내리고 싶지 않다.
이것만은 소녀가 흉내내지 못할 것이다.
'너희들 송아지를 타고 뭐 하는 거냐 !'
농부에게 야단을 맞고 나는 송아지 등에서 내려 뛰기 시작했다.
소녀도 내 뒤를 따라서 뛰기 시작했다.
10
조금 전까지 밝던 주위가 갑자기 어두워졌다.
먹구름이 머리 위에 와 있었다.
바람이 우수수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그리고는 금방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비안개 속에서 원두막이 보였다.
우리 둘은 비를 피하기 위해서 원두막으로 뛰어갔다.
두 사람의 옷이 흠뻑 젖어 있었다.
'아이.추워.'
소녀는 어깨를 가늘게 떨었다.
입술이 파랗게 변했다.'이거 입어.'
나는 윗옷을 벗어 소녀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
소녀는 내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원두막 안은 너무 좁았다.
나는 소녀에게서 떨어져서 바깥쪽으로 앉았다.
11
원두막 끝에 앉은 나는 그냥 비를 맞아야 했다.
그런 내 어깨에서 김이 오랐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 와.'
소녀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감기 걸리겠다.'
나는 할 수 없이 등을 돌린 채 앉은걸음으로 들어갔다.
그 바람에 소녀가 안고 있던 꽃다발이 망가져 버렸다.
그러나 소녀는 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비에 젖은 소녀의 머리에서 비누 냄새가 났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그냥 멍하니 밖만 보고 있었다.
12
비가 그치고 구름 속으로 햇빛이 언뜻 내비쳤다.
우리는 원두막을 나왔다.
비가 온 탓에 시냇물이 엄청나게 불어 있었다.
'어떡하지?'
소녀의 얼굴이 몹시 난처해 보였다.
'나 한테 업혀.'
소녀가 순순히 내 등에 업혔다.
나는 천천히 시내로 들어갔다.
허벅다리까지 오던 물이 갑자기 파도치며 허리까지 올라왔다. 순간,
'어머나 !'
소녀는 소리를 지르며 내 목을 끌어안았다.
나도 깜짝 놀라 소녀를 업은 팔에 힘을 더 주었다.
시내를 건너니까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개어 있었다.
13
그 날 이후도 소녀는 보이지 않았다.
시냇가에도 학교 운동장에도 어디에도 소녀는 없었다.
어느 날 주머니 속 조약돌을 만지작거리며 시냇가에 나갔다.
그런데 소녀가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동안 어떻게 지냈어?'
'좀 아팠어.'
'그 날 소나기를 맞은 탓 아니야?'
소녀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다 나았어?'
'아직도...'
'그럼 누워 있어야지.'
'너무 갑갑해서 나왔어. 참 ! 그 날 정말 재미있었어.'
소녀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14
'그런데 그 날 어디서 이런 물이 들었을까? 지워지지 않아.'
소녀는 분홍색 스웨터의 앞자락을 내밀며 말했다.
나는 말없이 분홍색 스웨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생각났다. 그 날 시내를 건널 때 내가 업힌 적이 있었지? 그 때 물이 든 거야.'
그 날 일을 떠올리자 갑자기 얼굴이 달아올랐다.
'자,이것 먹어 봐.오늘 우리 집에서 땄어. 아주 달아.'
갈김길에서 소녀는 나에게 대추를 몇 알 주었다.
나는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우리 다음 주에 이사가. 난 이사가는 게 싫기만 어른들이 하는 일이니까...'
전에 없이 소녀의 눈이 쓸쓸해 보였다.
나는 대추를 씹고 있었지만 대추의 단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15
그 날 밤 나는 몰래 이웃집 할아버지 호두밭으로 갔다.
호두가 많이 달린 나무를 낮에 봐 두었다.
나무 위로 올라가 작대기로 내리쳤다.
'호두야,많이 떨어져라,많이 떨어져라.'
내 머릿속은 '이 동네에서 제일 맛있는 호두를 소녀에게 주어야겠다' 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다가 '아차 !'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사 가기 전에 한번 만나자고 말하는 것을 잊은 것이다.
'바보,바보.'
16
이튿날 학교에서 돌아오니까 아버지가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 손에는 닭 한 마리가 들려 있었다.
'이만하면 될까?'
'아버지 ,어디 가세요?'
'윤 씨 댁이 이사 가잖아. 그랴서 닭이라도 한 마리 보내려고 해.'
아버지가 대답하셨다.
'아버지,그럼 큰 놈을 가져 가세요.'
아버지는 웃으시며,
'작아도 이 놈이 실속이 있어.'라고 하셨다.
나는 괜히 부끄러워 외양간으로 갔다.
파리라도 잡는 것처럼 소 등을 자꾸만 내리쳤다.
마지막
내일이면 소녀가 이사 간다.
'이사 가는 걸 보러 갈까...?'
잠자리에서도 같은 생각뿐이었다.
그러다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한밤중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야기하시는 소리에 잠이 깼다.
원가 분의기사 심상치 않다.
'윤 씨네 손녀가 죽었대.'
'아니,그럴 수가 ! 얼마 전에 아들이 죽었는데 또 손녀까지 잃다니요 !'
'그런데 그 집 어린애가 자기가 죽거든 평소에 입던 분홍색 스웨터를 입혀서 묻어 달라고 했대.'
갑자기 머리를 한 대 심하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러나와 베개를 적셨다.
터져 나오는 울음소리를 참느라 내 가슴은 몹시 아팠다.
1
내가 처음 소녀를 본 것은 시냇가였다.
하교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소녀는 시냇물에 손을 담그고 물장난을 하고 있었다.
나는 한눈에 소녀가 윤 씨네 손녀인 것을 알았다.
며칠 전 서울에서 전학 온 애다.
'서울에는 시내가 없는 걸까?'
소녀는 징검다리 한가운데에 앉아서 오직 물장난만 하고 있다.나는 시냇가에 앉았다.
소녀가 길을 비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마침 건너편에서도 시내를 건너려는 사람이 있어서 소녀가 길을 비겨 주었다.
2
이튿날은 좀 늦게 시냇가로 나왔다.
이 날도 소녀는 징검다리 한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분홍색 스웨터 밖으로 드러난 목덜미가 무척 하얬다.
소녀는 내가 서 있어도 그냥 물장난만 하고 있다.
그러다가 소녀가 물 속에서 뭔가를 하나 집어 냈다.
하얀 조약돌이 었다.
소녀는 벌떡 일어나 징검다리를 뛰어 건너갔다.
징검다리를 건너가다가 이쪽으로 돌아서며 , '바보' 하고 조약돌을 던졌다.
그리고는 소녀는 갈대밭 사이로 뛰어가 버렸다.
나는 소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대로 서 있었다.
그리고 소녀가 던진 하얀 조약돌을 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3
삼일째는 좀 더 늦게 시냇가로 나왔다.
소녀가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내 가슴 한구적이 왠지 허전했다.
나는 주머니 속 조약돌을 만지작거렸다.
소녀가 않아서 물장난을 하던 곳에 않아 보았다.
햇빛에 검게 탄 얼굴이 물에 비쳤다.
보기 싫었다.
두 손으로 물을 휘저었다.
소녀의 '바보 바보'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달리기 시작했다.
4
거의 열흘이 지났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소녀를 보았다.
또 물장난을 하고 있었다.
나는 모르는 체하고 징검다리를 건넜다.
'얘,이게 무슨 조개니?'
나도 모르게 돌아섰다.
소녀에 맑고 검은 눈과 마주쳤다.
나는 얼른 눈길을 아래로 떨구었다.
'비단조개.'
'이름도 참 예쁘구나.'
소녀와 조개 이야기를 하며 같이 걸었다.
갈림길에 왔다.
소녀는 왼쪽으로 가야하고 나는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
5
소녀는 걸음을 멈추고,'너 저 산 너머에 가 본 적이 있니?'
멀리 보이는 산을 가리키며 물었다.
'없다.'
'우리 한번 가 볼래? 시골에 오니까 심심해 죽겠다.'
'저래 봬도 멀다.'
'멀면 얼마나 멀겠어? 나 서울에 있을 때 더 먼 곳까지 소풍 갔다.'
소녀의 눈이 금방 '바보 바보' 할 것 같았다.
논길로 들어섰다.
논에는 허수아비가 서 있었다.
나는 허수아비 줄을 흔들었다.
'와,재밌다 !'
소녀도 허수아비 줄을 잡고 흔들어 댔다.
허수아비가 춤을 춘다.
소녀가 웃을 때마다 볼에 보조개가 생겼다.
6
논이 끝나는 곳에 시내가 하나 있었다.
소녀가 먼저 뛰어 건넜다.
나도 그 뒤를 따라 건넜다.
거기서부터 산 아래까지는 밭이었다.
'저게 뭐니?'
밭길을 지날 때 고녀가 물었다.
'무밭이야.여기 무 참 맛있다.'
'그래? 나도 한번 먹어 보고 싶다.'
나는 무밭으로 들어가서 무를 두 개 뽑아 왔다.
내가 먼저 한 입 베어 먹었다.
소녀도 따라 베어 먹었다.
그러나 세 입도 못 먹고,'아이,매워.' 하며 집어던졌다.
'정말 ! 매워서 못 먹겠다.'
나는 소녀보다 더 멀리 던져 버렸다.
7
산이 가까이 다가왔다.
산 아래에는 꽃이 잔뜩 피어 있었다.
'이 꽃들 이름이 워니?'
'이건 들국화,이건 도라지꽃...'
소녀가 꺾은 꽃의 이름을 하나하나 가르쳐 주었다.
'도라지꽃 참 예쁘다.여기에는 서울에서 보지 못한 꽃이 많이 있네.'
나도 꽃을 꺾기 시작했다.
한아름 꺾었지만 싱싱한 꽃만 소녀에게 주었다.
'저건 또 무슨 꽃이니?'
꼭 우리 학교에 있는 등꽃 같아'
소녀는 산비탈로 뛰어가서 꽃가지를 꺾으려고 했다.
하지만 쉽게 꺾이지 않았다.
치맛자락 아래로 속치마가 언뜻 보였다.
소녀의 모습을 나는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8
'아앗 !' 소녀는 산비탈에서 그만 미끄러지고 말았다.
나는 깜짝 놀라 달려갔다.
소녀는 넝쿨을 잡고 있었다.
'도와 줘.'
소녀가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얼른 잡았다.
그리고 힘껏 끌어올렸다.
소녀의 오른쪽 무륲에서 피가 흘렀다.
나도 모르게 소녀의 상처에 입술을 대고 빨랐다.
그러다 갑자기 송진 생각이 나서 소나무숲으로 달려갔다.
송진을 바르는 순간 소녀가 비명을 질렀다.
'앗,따가워.'
'이걸 바르면 빨리 낫는다.'
소녀가 전에 없이 얌전히 있었다.
9
나는 소녀 대신에 산비탈로 내려가 꽃을 꺾어 왔다.
꽃을 한 아름 든 소녀의 모습이 누부시다.
나는 얼른 눈을 돌렸다.
'저기 송아지가 있다.그리 가 보자.'
누런 송아지였다.
아직 어린 송아지였다.
나는 얼른 송아지 등에 올라탔다.
송아지가 껑충거리며 돌아간다.
소녀의 하얀 얼굴과 분홍색 스웨터가 빙빙 돌아간다.
머리가 어지럽다.하지만 내리고 싶지 않다.
이것만은 소녀가 흉내내지 못할 것이다.
'너희들 송아지를 타고 뭐 하는 거냐 !'
농부에게 야단을 맞고 나는 송아지 등에서 내려 뛰기 시작했다.
소녀도 내 뒤를 따라서 뛰기 시작했다.
10
조금 전까지 밝던 주위가 갑자기 어두워졌다.
먹구름이 머리 위에 와 있었다.
바람이 우수수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그리고는 금방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비안개 속에서 원두막이 보였다.
우리 둘은 비를 피하기 위해서 원두막으로 뛰어갔다.
두 사람의 옷이 흠뻑 젖어 있었다.
'아이.추워.'
소녀는 어깨를 가늘게 떨었다.
입술이 파랗게 변했다.'이거 입어.'
나는 윗옷을 벗어 소녀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
소녀는 내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원두막 안은 너무 좁았다.
나는 소녀에게서 떨어져서 바깥쪽으로 앉았다.
11
원두막 끝에 앉은 나는 그냥 비를 맞아야 했다.
그런 내 어깨에서 김이 오랐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 와.'
소녀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감기 걸리겠다.'
나는 할 수 없이 등을 돌린 채 앉은걸음으로 들어갔다.
그 바람에 소녀가 안고 있던 꽃다발이 망가져 버렸다.
그러나 소녀는 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비에 젖은 소녀의 머리에서 비누 냄새가 났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그냥 멍하니 밖만 보고 있었다.
12
비가 그치고 구름 속으로 햇빛이 언뜻 내비쳤다.
우리는 원두막을 나왔다.
비가 온 탓에 시냇물이 엄청나게 불어 있었다.
'어떡하지?'
소녀의 얼굴이 몹시 난처해 보였다.
'나 한테 업혀.'
소녀가 순순히 내 등에 업혔다.
나는 천천히 시내로 들어갔다.
허벅다리까지 오던 물이 갑자기 파도치며 허리까지 올라왔다. 순간,
'어머나 !'
소녀는 소리를 지르며 내 목을 끌어안았다.
나도 깜짝 놀라 소녀를 업은 팔에 힘을 더 주었다.
시내를 건너니까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개어 있었다.
13
그 날 이후도 소녀는 보이지 않았다.
시냇가에도 학교 운동장에도 어디에도 소녀는 없었다.
어느 날 주머니 속 조약돌을 만지작거리며 시냇가에 나갔다.
그런데 소녀가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동안 어떻게 지냈어?'
'좀 아팠어.'
'그 날 소나기를 맞은 탓 아니야?'
소녀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다 나았어?'
'아직도...'
'그럼 누워 있어야지.'
'너무 갑갑해서 나왔어. 참 ! 그 날 정말 재미있었어.'
소녀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14
'그런데 그 날 어디서 이런 물이 들었을까? 지워지지 않아.'
소녀는 분홍색 스웨터의 앞자락을 내밀며 말했다.
나는 말없이 분홍색 스웨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생각났다. 그 날 시내를 건널 때 내가 업힌 적이 있었지? 그 때 물이 든 거야.'
그 날 일을 떠올리자 갑자기 얼굴이 달아올랐다.
'자,이것 먹어 봐.오늘 우리 집에서 땄어. 아주 달아.'
갈김길에서 소녀는 나에게 대추를 몇 알 주었다.
나는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우리 다음 주에 이사가. 난 이사가는 게 싫기만 어른들이 하는 일이니까...'
전에 없이 소녀의 눈이 쓸쓸해 보였다.
나는 대추를 씹고 있었지만 대추의 단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15
그 날 밤 나는 몰래 이웃집 할아버지 호두밭으로 갔다.
호두가 많이 달린 나무를 낮에 봐 두었다.
나무 위로 올라가 작대기로 내리쳤다.
'호두야,많이 떨어져라,많이 떨어져라.'
내 머릿속은 '이 동네에서 제일 맛있는 호두를 소녀에게 주어야겠다' 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다가 '아차 !'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사 가기 전에 한번 만나자고 말하는 것을 잊은 것이다.
'바보,바보.'
16
이튿날 학교에서 돌아오니까 아버지가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 손에는 닭 한 마리가 들려 있었다.
'이만하면 될까?'
'아버지 ,어디 가세요?'
'윤 씨 댁이 이사 가잖아. 그랴서 닭이라도 한 마리 보내려고 해.'
아버지가 대답하셨다.
'아버지,그럼 큰 놈을 가져 가세요.'
아버지는 웃으시며,
'작아도 이 놈이 실속이 있어.'라고 하셨다.
나는 괜히 부끄러워 외양간으로 갔다.
파리라도 잡는 것처럼 소 등을 자꾸만 내리쳤다.
마지막
내일이면 소녀가 이사 간다.
'이사 가는 걸 보러 갈까...?'
잠자리에서도 같은 생각뿐이었다.
그러다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한밤중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야기하시는 소리에 잠이 깼다.
원가 분의기사 심상치 않다.
'윤 씨네 손녀가 죽었대.'
'아니,그럴 수가 ! 얼마 전에 아들이 죽었는데 또 손녀까지 잃다니요 !'
'그런데 그 집 어린애가 자기가 죽거든 평소에 입던 분홍색 스웨터를 입혀서 묻어 달라고 했대.'
갑자기 머리를 한 대 심하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러나와 베개를 적셨다.
터져 나오는 울음소리를 참느라 내 가슴은 몹시 아팠다.
by hiroharuh
| 2007-08-04 08:24
| にわか雨(소나기)
韓国語学習をゆっくり地道にやっています。
by hirohar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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